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남 안나의 집 벤츠 모녀 사건 (문단 편집) == 안나의 집과 김하종 신부 == 먼저 해당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, 사건의 중심인 안나의 집과 김하종 신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. [[http://www.annahouse.or.kr|안나의 집]]은 [[경기도]] [[성남시]] [[중원구]] 마지로 28[* 지번주소는 [[하대원동]] 17. 인근에 [[모란시장]]이 있다.]에 위치한 시설로, [[천주교 수원교구]] 성남동 성당과 이웃해 있다. [[노숙인]]과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는 사목을 하며, 매일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. 김하종 신부(1957년생, [age(1957-01-01)]세)는 본래 [[이탈리아]]에서 태어났고, 본명은 '빈첸시오 보르도(Vincenzo Bordo)'였다. 고등학교 졸업 후 [[http://www.oblates.or.kr|오블라띠 선교수도회]]에 입회, 1987년(30세)에 [[성품성사|사제서품]]을 받아 [[수도자|수사]][[신부(성직자)|신부]][* [[수도회]] 소속의 [[신부(성직자)|신부]]. 신부는 [[교구]] 소속 신부와 수도회 소속 신부로 나뉘는데, 일선 [[성당]]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부들은 교구신부이다. 수도회 소속 신부는 수사신부, 수도사제, 성직수사 등으로 부른다. 신부는 반드시 교구 또는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.]가 되었다. 동양, 특히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1990년부터 실제로 한국으로 파견하여 사목 활동을 시작했으며, 이 당시 [[김대건 안드레아]] 신부의 성씨에서 '김'을 따오고 ''''하'''느님의 '''종''''에서 두 글자를 따서 본인의 한국 이름을 김하종으로 지었다. 김하종 신부는 [[성남시]]에 와서 성남동 성당 부설로 독거노인 무료급식소를 운영했는데, [[1997 IMF|IMF 위기]]로 운영이 어려워져 곤란을 겪게 되었다. 이때 한 신자가 김하종 신부를 찾아와 "돌아가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"며 자신 소유의 건물을 무료 임대해주었다. '안나의 집'이라는 이름은, 건물을 임대해 준 신자 어머니의 세례명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. 건물은 해결됐지만 이런 일을 진행하기 쉬운 게 아니라서, 처음에는 굉장히 고생했다. 처음 보는 식당에 들어가서 냉대를 무릅쓰고 식자재를 나눠달라고 애걸하기도 했으니. 하루는 너무 힘들어 [[십자가]]상의 [[예수]]에게 '''삿대질하면서 반말로''' "도와주지 않으면 다 때려칠 거"라고 협박(?)했고, 이후로는 일이 잘 풀렸다고 한다.[[http://manpeace.org/bbs/board.php?bo_table=jage&wr_id=223348|#]] [[1997 IMF|1997년 IMF 외환위기]]를 계기로, 김하종 신부는 독거노인뿐 아니라 [[노숙인]]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돕기 시작했다. 그는 노숙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유도하고 노숙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나의 집을 설립한 뒤, 노숙인을 포함한 노약자들 지원활동을 헌신적으로 해왔다.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에서는 정식적으로 [[한국]] [[국적]]을, 2019년에는 [[국민훈장]] 동백장을 받았다. 안나의 집은 한국 외 다른 나라에서도 후원을 받는다. 특히 [[이탈리아]]는 김하종 신부의 조국인데다 [[주한이탈리아대사관]]에서도 김하종 신부의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 알고 있어서, 안나의 집 행사에 대사가 참석하거나 대사관 사교모임에 초청하여 후원 소개를 해주는 등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.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zPYVbX74whg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